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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달구는 빅서 게이트, 그 근간에 있는 수리권 논쟁

  |  입력 : 2020-11-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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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가리지 않고 특정 맥북 모델을 벽돌로 만드는 빅서 업데이트
애플코리아의 소비자 대처에 논란 일어나...우리가 수리할 수 있었다면?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이른 바 ‘빅서 게이트’라는 사건이 여러 커뮤니티를 들끓게 하고 있다. 한 사용자가 애플의 새 OS인 빅서(Big Sur)로 업데이트를 했더니 맥북이 벽돌로 변했다(아무런 작동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미 해외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수차례 지적되어 온 문제였다. 기계와 OS가 호환되지 않게 만든 제조사의 잘못인 게 당연한 상황.

[이미지 = utoimage]


하지만 이 사용자의 증언에 따르면 가로수길 애플코리아 직원들은 ‘영어를 할 줄 알면 매니저와 상담하게 해 주겠다’라거나(해외에서 이런 발언은 인종차별에 기반을 둔 헤이트 스피치로 분류된다) ‘오래된 장비를 쓰고 있는 게 잘못’이라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영어로 번역돼 레딧을 달구는 중이기도 하다. 애플의 악명 높은 A/S 서비스가 수년 동안 누적되어서인지 애플을 변호해주는 의견은 찾기가 대단히 힘들다.

제조사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제조사와 개발사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를 드러내는 사건은 더 있다. 최근 이탈리아의 한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코로나 사태로 병원의 인력과 장비가 동이 나는 상황에서 산소 호흡기가 고장을 일으켰다. 환자의 얼굴에 씌우는 마스크 부분이 깨진 것이었다. 산소가 아무리 잘 나와도, 응급 환자의 호흡 기관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병원은 이를 고치기 위해 수소문을 했고, 동네의 3D 프린터 업자의 도움을 받아 똑같은 산소 마스크를 제작해 환자들을 계속해서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제조사가 너무 멀어서 3D 프린터 업자를 섭외한 걸까? 아니다. 제조사인 벤투리(Venturi)는 병원의 연락을 받았지만 수리를 거부했고, 심지어 병원이 자체적으로 부품을 수리해 쓸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든 ‘정품만’ 사용이 가능하니, 일단 제품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고, 병원은 수리에 들어갔다. 제조사가 3D 프린터 업자에게 설계와 재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애로 사항이 많았다고 한다.

뜻밖의 배후 세력, 저작권
어떤 법을 근거로 해서 사용자의 자체 수리까지 금지시키려고 했던 걸까? 바로 저작권법이다. 정확히 말하면 96년 미국에서 통과된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이 원흉이다. 특히 DMCA 1201이라고 알려진 항목이 문제다. 생산자가 걸어놓은 디지털 권리 관리(Digital Rights Management, DRM) 기술을 그 누구도 - 장비/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구매한 소비자도 - 우회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DRM 기술이라면 당연히 우회하지 못하게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장비 제조사들과 개발사들이 이 법을 악용하기 시작했다. DRM 기술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집어넣고는 자신들 외에는 그 누구도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용자들은 좀 더 나은 서드파티 배터리를 구해 아이폰에 넣을 수도 없게 되었고, 제조사들은 소비자들의 장비/서비스 활용 패턴과 방법, 구매 주기까지도 지정해줄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게 됐다.

2017년 아이폰의 한 사용자는 새 iOS 업데이트를 적용하면 전화기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애플이 일부러 이렇게 업데이트를 했다는 증거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애플은 배터리를 보호해 오래된 아이폰이 예기치 않게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새 폰을 더 자주 구입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완벽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마치 환경 보호를 위해 새 아이폰의 박스 구성품을 줄였다고 애플은 주장하지만, 사실은 마진을 더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아는 것과 같다.

저작권법을 없앨 수는 없고...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은 DMCA 1201 덕분에 온갖 수준 이하 사물인터넷 장비들이 시장에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까지 표현한다. 얼마 전에는 ‘소비자들이 직접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고칠 수 있게 해 달라’는 주장이 담긴 글을 공식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이른 바 수리권(right to repair)을 주장한 것이다.

수리권은 원래 자동차 산업에서 출발한 것이다. 외딴 지역의 농부들이 트랙터 등 중장비 농기구를 현장에서 쓰다가 고장이 났을 때 저작권을 어기지 않기 위해 원 제조사의 수리 서비스만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2012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장비 제조사는 농부들이 자가 수리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필요한 정보와 문건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디지털 장비에도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TRA(The Repair Association)라는 단체가 2013년 출범했다. 참고로 애플은 이 2012년 수리권의 폐지를 주장 혹은 이 법이 확대되는 걸 적극 반대하는 기업이다.

수리권의 존재 이유
저작권법이 필요한 이유는 이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 저자의 창의력을 존중해주고, 그에 대한 가치 창출 기회를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차, 3차 창작물이 탄생하는 걸 촉진시켜 사회 공동체를 풍족하게 한다는 의의도 존재한다. 수리권은 어떨까?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카렌 터너(Karen Turner)는 소비자가 반드시 생산자로부터만 수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때 반독점법 위반 행위가 발생하고, 혁신이 제한되며, 환경오염이 빨라진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한 회사만 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한 회사만 필요한 부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이 되므로 반독점법 위반이 될 수 있고, 수리 과정에 동반되는 여러 분석 행위가 사라지니 혁신의 기회가 줄어들며, 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이 오래된 제품의 수리보다는 세 제품의 판매에만 집중할 것이 뻔하니 쓰레기가 늘어나 환경적으로 좋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전자프런티어재단은 코로나 때문에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힘든 시기라면 더더욱 수리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반대로 수리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해킹 연구가 더 활발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해커들이 마음껏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분해해 자기의 목적에 맞게 개조하더라도 법적으로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현상은 활발히 일어나고 있으며(예 : 모의 해킹 도구들은 실제 해킹 공격에 자주 활용되며 윈도 기본 유틸리티를 악용하는 공격 사례들도 흔해지고 있다), 애초에 해킹 범죄자들은 법적 제한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리권이 존재했다고 해서 이번 빅서게이트가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애플 장비들의 사설 수리가 원활한 시대였다면 지난 10년 동안 노하우를 쌓은 누군가가 더 나은 해결법을 들고 나왔을 수도 있고(지금 애플이 부랴부랴 내놓은 조치는 결국 껐다 켜보고 안 되면 공식 수리 센터에 가보라는 수준이다), 애플도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니어스 바(Genius Bar)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리와 분석을 통해 애플 장비를 좀 더 잘 알게 된 소비자들과 전문가가 시장에 다수 포진해 있다면, 사람의 면전에 대고 ‘영어는 할 줄 아시냐’라거나 ‘오래된 제품을 쓰는 게 잘못’이라는 말은 제 아무리 애플이라도 쉽게 뱉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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