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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단상] 전통의 명절, 예스러움 가득한 화장실에 앉아
  |  입력 : 2020-09-3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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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직전 퇴근 한 시간 전에 추석 특집 쓰라고 하기에 고민하다가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거꾸로 올라오는 창백한 손들이 사라졌다. 어두움 짙게 깔린 대문 밖으로 나가 덜덜 떨며 재래식 화장실로 냅다 뛰던 기억들도, 그 길을 홀로 가느니 밤새 배에 힘줘 쉬를 참던 조바심이며, 그 노력이 낭패로 끝났을 때 어이구 어이구 볼기짝 맞던 아픔들도 이제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아직 쉬 가리지 못하는 애기들이라도 이제는 기저귀의 단계를 거친 후라면 더는 걱정할 것이 없다.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뒤 괴담의 주인공들이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미지 = utoimage]


변기 밑에서부터 손을 들이밀며 화장지를 고르라던 녀석들이, 명색이 초자연적 존재인데, 현대식 집 구조의 배관 시설이 재래식 화장실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실직한 것은 아닐 테다. 특정 시간이 지나고 특정 옷을 입고 특정 준비물을 갖추면 화장실 거울에 비친다던 것들도 알량한 대문을 뚫지 못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집 밖에 있던 화장실이 안방 바로 옆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 즉 소리 지르면 대단히 짧은 시간 안에 구조의 손길이 당도할 수 있다거나 바로 안전 구역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 위협적 존재들은 구전의 형식으로조차 잘 남겨지지 않고 있다.

우리 때는 그렇게 무서웠던 이야기가 요즘 아이들에게는 농담거리가 된 것을 보니 현대식 화장실의 보급과 함께 재래식 화장실의 소멸이 상당히 이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물리적 소멸이든 단순 경험의 소멸이든, 혹은 인간 인식 전반에 걸쳐 퍼진 과학의 파급력이든, 아무튼 그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가 대화의 소재로서의 힘을 잃어간다는 건 우리에게 새로운 위협이 다가온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넓디넓은 분뇨 통을 가졌던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좀처럼 겪기 힘든 역류 현상과, 물티슈 몇 장에 정화조가 장애를 일으키는 경험을 더 진하게 기억하고 있고, 뚜껑을 연 채 물을 내리는 행위의 불결함이 전파되는 것을 듣고 나누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든 일을 앉아서 보는 게 깨끗하다는 교육을 각종 매체를 통해 이따금씩 받고 있다. 그 옛날 괴담처럼 - 아마 밤늦게 발을 잘못 디뎌 변기통 밑으로 빠질 것을 염려하여 조심하라고 만들어진 방어 대책이지 않을까 - 지금도 각종 해악 요소로부터 도망가라는 이야기들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낡은 위협이 사라진 자리에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위협들이 자리한다.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되면 또 다른 고민이 찾아오지 않던가. 일자리를 간절히 원하던 사람들이라도 취직 후 1주일만 지나면 그 곳을 박차고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두 가지 마음에 품기 시작한다. 그토록 원하던 사람과 온갖 난관을 뚫고 결혼을 해도, 금방 이혼하는 게 또 사람이다. 끊임없이 문제와 맞닥트리고 해결하는 것, 시지프스의 운명이 먼 나라의 오래된 신화처럼만 여겨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정보보안은 재래식 화장실의 귀신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공유되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위협들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어, 아직 글자가 발견되지 않아 암송으로 지혜를 전수하는 시대였다면 수많은 지혜자들의 위대한 머리통이라도 터져나갔을 것이다. 문제가 쌓여간다는 것이다. 보안의 골칫거리들이 처음부터 완전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었거나, 충분히 해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비율이 50:50은 아니다. 대부분은 완전 해결이 불가능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수년 전 문제가 살아나고 또 살아나는 것이다.

실수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 미스클릭. 어디에 깜빡 두고 온 회사 노트북. 회사에 불만을 품은 옛 직원의 집요한 원한. 국경을 마주하고 으르렁거리는 나라들이 가진 염탐의 필요성.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심화되는 경쟁의 분위기. 그렇기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는 업무 환경과 감수되는 위험.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하게 되니 듣는 자나 말하는 자 모두에게서 흐트러지는 경계심. 단순 망각 혹은 건망증. 이 모든 것을 어느 누가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지금의 여러 문제들을 단순히 ‘문제의 누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마냥 후세에 떠넘겨지는(혹은 사수에서 부사수로) 아버지들의 과업(혹은 과실)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발견에서 곧바로 해결로 연결되는 문제들이 몇이나 있는가.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을 관찰하고, 그 현상들을 관통하는 질문 하나를 도출해, 여러 가지 분석과 실험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시간 속에 누적시킴으로써 증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결의 과정이다. 보안 분야 역시 지금은 사건과 현상들을 더 수집해야 하는 때일 수도 있다. 혹은 질문을 도출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일견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의 정보보안 업계는, 앞으로 다가온다고 예고되는 각종 n차 산업혁명이나 스마트 시대나 5G 시대 등의 진정한 안전을 위해 사건을 온 몸으로 겪어야 하는 세대일 수도 있고, 정확하고 예리한 질문 하나를 후대에 전달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록하고 남기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여기까지고, 우리가 풀지 못한 질문은 이것이다, 라고. 보안이라는 거울로 본 인간은 이런 모습이고,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유지되거나 변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당신들도 당대의 인간들을 통해 그 가설을 분석해보라고.

이제 재래식 화장실에 얽힌 이야기들을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대략의 얼개 외에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은 그 때 변기 밑으로 빠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만든 이야기’라는 교훈을 덧붙인다. 그러면 듣는 아이들이 이런 재밌지도 무섭지도 않은 이야기의 존재 이유를 납득한다. 한 세대를 지나면서 원래 이야기에 시대성이라는 살이 붙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족히 수십 년은 걸렸다. 재래식 화장실이 더 희박해질 다음 세대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보정하거나 각색할까? 그 옛날 해커들은 이메일로만 공격해도 충분히 먹고 살았대, 라는 이야기가 도시 괴담처럼 퍼질 때,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어떤 위협을 마주하고 있을까?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오래된 명절에, 옛 기억 가득한 화장실에 앉아 기자는 상상만 할 뿐이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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