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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알.남] GDPR, 화웨이, 틱톡...‘디지털 주권’ 싸움의 마일스톤
  |  입력 : 2020-09-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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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하게 벌어지는 조용한 싸움...각자가 디지털 주권을 쥐기 위해 다투고 있어
그 가운데 터지고 있는 건 소비자와 유권자로서의 권리...어쩌면 그냥 내주고 있을 수도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오랜만에 평화로웠던 주말의 아침을 즐기려 하는데, 구독하던 외신 앱들에서 일제히 알림 표시가 떴다. 트럼프 대통령의 틱톡 및 위챗 금지령 때문이다. 화웨이에서 시작된 미국의 중국 견제는 기어이 틱톡과 위챗의 금지로 이어졌다, 물론 이것이 법적으로 확실한 기반을 가질 수 있는 움직임인지, 사용자들의 반발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풀어야 할 숙제가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대선도 앞두고 있어 수를 잘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으니, 틱톡과 위챗에서 이 거대한 덩치들의 기 싸움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이미지 = utoimage]


날짜를 조금 더 뒤로 돌려보자.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자 여러 나라들에서 ‘확진자/접촉자 추적 앱’을 개발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도 그런 나라들 중 하나였다. 이들은 구글과 애플이 제공하는 API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앱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공식적으로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실패도 발표했으며, 구글과 애플이 만들어 놓은 환경과 호환이 되는 앱을 개발하겠다고도 자신들의 계획을 정정하여 발표했다. 이것이 지난 6월의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선택
왜 처음부터 구글과 애플의 API를 배제한 모바일 앱을 만들려고 했을까? ‘모바일 앱’이라는 말 자체에 ‘구글과 애플에 대한 의존도’라는 함의가 가득 담겨 있는 게 현실인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까? 정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명색이 나라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려는 앱인데, 타국 기업이 언제고 ‘손절’하면 끝나는 서비스를 처음부터 기획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두 개의 미국 회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제 타국 정부 기관들이 실패를 공식 인정하고 있던 계획도 철회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세상 속에 자발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게 만들 정도다.

유럽이 일방적으로 당할 곳은 아니다. (위 사건으로 앙심을 품고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7월 16일 유렵연합 사법부는 미국 기업들이 유럽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충분히, 안심할 정도로 보호하지 않는다며 유럽과 미국 간 데이터 보호 조약인 ‘데이터 보호 실드(Data Protection Shield)’를 무효화시켰다. 이로써 유럽은 미국 기업들에 ‘유럽의 소비자 데이터를 너네 마음대로 상업적으로 이용할 생각 하지마’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기업과 소비자들 사이에 공권력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놓고 세상은 권력 다툼에 돌입하고 있다. 무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주권 싸움이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싸운 것이나, 유럽에서 중세부터 이어진 교황과 국왕들 사이 전쟁들이 현대에 와서는 ‘디지털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 틱톡을 미국에서 금지시키는 것이나, 화웨이 기술을 사용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나라들이 골머리를 앓는 것, 심지어 소비자를 위한다며 유럽연합이 GDPR이라는 무시무시한 규정을 신설한 것도 전부 이 주권 싸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것에 ‘디지털 주권’이라는 이름이 새로 붙었을 뿐이다.

서로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디지털 주권 싸움은 대단히 복잡하게 발생하고 있다. 서로들 여러 적을 안고 머리채를 휘어잡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중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디지털 주권’ 싸움이 화웨이와 틱톡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참고로 인도의 경우 히말라야 근처의 인도-중국 국경 분쟁 사건이 터지고 나서 곧바로 틱톡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런 미국 내에서는 미국 정부가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을 대상으로 불공정 거래 및 독점 금지를 위한 공청회를 여는 등 기업 대 정부의 주권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럽연합은 상기했듯 GDPR과 데이터 실드 조약을 통해 바다 건너 미국의 거대 기업을 견제하며 나라 대 나라뿐만 아니라 나라 대 기업의 싸움 구도 모두를 여는 데 성공했고, 화웨이 역시 유럽연합에 “만약 미국의 협박을 못 이겨 화웨이 기술 사용을 하지 않을 경우, 중국 정부 역시 노키아나 에릭슨과 같은 유럽 기업에 보복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으며 나라 대 대륙, 나라 대 기업의 싸움을 모두 연출했다. 양상이 이러니 디지털 주권이라는 개념을 한 번에 깔끔하게 정리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나마 나라 대 나라의 디지털 주권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명백하다. 위 영국과 독일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디지털 기술에 종속되기 시작하면 국가가 관리하는 거대 프로젝트의 성쇠가 다른 나라에 좌지우지 된다. 디지털 시대에, 독자적으로(주권적으로) 뭔가를 시작하거나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디지털 기술이라는 게 눈속임에 최적화 된 것이다 보니 국가 안보에 중요한 데이터가 타국 앱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도 무시 못 할 부분이다. 미국이 중국을, 유럽연합이 미국을 물고 늘어지는 게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하다.

나라 대 기업, 그 틈 속의 소비자
나라 대 나라의 디지털 주권 싸움이 매체만 달라졌을 뿐 대단히 오래된, 그래서 역사 시간에 수도 없이 배운 나라 대 나라의 싸움과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면, 나라 대 기업의 주권 싸움은 조금 복잡하다. 그리고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기업의 역할은 디지털 기술의 설계, 생산, 판매, 유지이고, 정부의 역할은 이러한 모든 것을 규제하는 것이다. 여기서 여론이 크게 두 개로 갈린다.

1) 시장 원리에 맡기면 충분하다. 규제는 필요 없고 오히려 기업의 혁신을 방해한다. 자유 시장 만세. Laissez-faire 만세.
2) 기술이 발전이 너무 빠르고 기업 운영이 영민해지고 있어 현재 법 시스템으로서는 규제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이 제멋대로 나가고, 그러므로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규제가 필요하다. 기업가나 도둑놈이나.

하지만 시장의 자율성을 철썩 같이 믿는 것이나, 규제의 엄격함이 걸음걸음마다 작용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나 너무 극단적이다. 규제가 엄격한 국가가 실패한 사례는 누구나 금방 떠올릴 수 있어 지면을 할애하지 않겠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나 시장의 자정 작용에 의해 충분히 변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대기업들이 행위에 의해 충분히 깨졌다. 집중된 권력을 가진 기업들과 정당들은 예외 하나 없이 헤게모니를 형성했다. 교묘히 법과 규제를 피해 덩치를 불렸는데, 그게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구매와 투표의 권력을 가진 ‘소비자 및 유권자’에서 플랫폼과 서비스에 종속된 팔로워 혹은 사용자로 지위를 낮추게 되었다.

이 지점이 현재까지 진행된 디지털 주권 싸움의 가장 큰 부작용이다. 고래들이 싸우면서 새우인 우리의 이름이 user와 follower가 되었다는 것 말이다. 지금 기업이나 정당이 우리를 ‘소비자’나 ‘유권자’로 일컬을 때는 우리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기본적으로 갖춘 권력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인정해주는 단어를 써서 자기들을 사용하거나 따르게 하기 위해서다. 구글이 우리를 소비자라고 부르지만, 안드로이드 모바일 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애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외에 SNS은 많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방대한 네트워크를 갖출 수 있는 곳은 없다. 구글 플러스조차 문을 닫게 했는데, 일개 소비자가 어떻게 여기에 대항할 수 있는가.

그래서 디지털 주권은 사실 거대한 개체들이나 IT 전문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단위에서 치열하게 벌어져야 할 전쟁이다. 특정 기업이나 기술, 그리고 정당에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것과, 그것의 팔로워로서 전업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호구 잡히지 않는 것’부터 디지털 주권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틱톡을 금지시킨다고 했을 때, 난 트럼프 지지자니까 찬성한다고 한다거나, 난 틱톡 사용자이고 친구도 많으니까 반대하는 게 소비 권력이 아니다. 정말로 틱톡이 개인정보를 중국 서버로 빼돌리는지 보안 업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틱톡을 끊는 게 삶의 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아직 싸움은 더 남았다
GDPR이라는 유럽연합의 규정이 아직도 남의 얘기인가? 보안 업계만의 사정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 그것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한 것인지, 정치 공동체와 거대 기업들 간의 전무후무한 담합으로 이어지는 주춧돌이 될지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미중 무역 전쟁에 화웨이의 이름이 나온 것 역시 5G를 준비하는 우리로서도 강 건너 불 구경 할 소재는 아니다. 보안 업계가 정치공학에 매이지 않고 화웨이 기술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런 노력은 없는 듯하다.

디지털 주권 싸움은 사실 미국 기업들에 상당히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여기에 인구수와 기술력 모두를 갖춘 중국과 인도가 부지런히 추격 중에 있지만 아직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 시점에 MS의 도구들을 대체할 생산 도구들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안드로이드와 애플 진영을 모두 이길 제3의 뭔가가 등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이미 디지털 주권 싸움이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하는 의견들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주권을 ‘인공지능 디지털 주권’이나 ‘5G 디지털 주권’처럼 세분화 할 경우, 미국이 마냥 여유로운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GDPR과 같은 견제 수단이 남아 있음을 우리는 2년 전부터 목도해 왔다. 이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움찔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기업들의 비밀스런 실체가 드러났고, 실제 미국에서도 CCPA라는 규정이 등장해 기업들이 견제를 받았다. 남중국해에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중국이 아직 제대로 싸우지도 않은 미국의 견제에 쩔쩔 매고 있는 걸 보면 고소하기도 하다. 디지털 주권을 둔 싸움이 존재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개개인의 디지털 주권은 누가 될지 모르는 승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디지털 주권 싸움은 국지전 양상을 띠고 있고 승자가 대부분을 독식하는 게 현대 자본주의의 형태라 우리는 이미 끊임없이 승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호구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애플은 매년 주식시장 기록을 갱신하는 거대 자본이고, 베조스는 온갖 석유왕들을 제친 세계 1위 부자이며, 시진핑은 광활한 대륙의 황제인데, 나라는 개인이 가진 소비력이나 투표권은 알량함을 넘어 불쌍해 보인다. I는 아무리 대문자로 써도 왜 그리 비루하도록 날씬하기만 한지.

그런데 바로 그 생각에 행동이 지배당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남이 원하는 생각을 해줄 뿐이며, 남이 조작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할 뿐이다. 사유하는 소비자나 유권자가 아니라 어딘가에 종속된 user와 follower로서의 존재감만 남는다. 물론 그것으로도 충분히 괜찮다면 그렇게 사는 것 또한 개인적 디지털 주권의 행사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아니, 있을까?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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