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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안, 그 못생김의 축복에 대하여
  |  입력 : 2019-11-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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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못생긴 건 이제 그만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최근 한두 해 정도, 수면제와 다름 없다고 여겨왔었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적잖게 볼 기회가 이어졌다. 그 중에는 대만과 홍콩에서 만든, 예쁘고 잘 생긴 주인공들의 힘만으로 러닝타임을 채우는 영화들도 꽤 섞여 있었다. A가 B에, 그리고 B가 A에 이끌리는 데 있어 개연성이라는 요소를 이야기 속에 부각시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냥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 ‘아’하고 이해하게 되어버리는 그런 주인공들 말이다.

[이미지 = iclickart]


줄리아 로버츠나 휴 그랜트의 전성기 영화를 끝까지 다 본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등한시 해온 탓에 무식해서 그런 건지, 개인적으로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으로 여겨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요 몇 년 사이 우연찮게 그런 영화만 보게 되어서 그런 건지,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하나 있었다. 대부분 여자 편에서 무한 순정으로 사랑이 이뤄질 때까지 남자를 좇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가 결국 잘 생기고 멋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만 읽으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남자 아이돌팬’ 양산 영화 같이 느껴질 수 있다. 여성팬과 남성팬들이 쓰는 돈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실제 영화 제작사의 그런 목적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그 배우들이 얼마나 잘생겼던지, 그 지독한 불균형에도 납득이 갔다. 심지어 ‘아, 하루만 못 생겨보고 싶다’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매일 못생긴 채 사는 것에서 이제는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보안이라는 분야는 사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잠도 설쳐가며 기다리는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라든가, 유튜버들이 리뷰하려고 앞다퉈 예약 구매를 하는 신기종들이 넘실대는 곳과는 가까우면서도 멀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모바일용 백신이 나왔다고 해서 개발사 사장이 터틀넥 셔츠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자서전을 쓰지는 않는다. 보안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리뷰어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넘쳐나는 구독자에게 방화벽을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걸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보안 업계 내에서도 성과를 예쁘고 멋지게 보여주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따금씩 등장한다. 방어에 성공한 횟수를 도표로 만들라거나, 그걸 CEO들이 이해하기 좋게 금액으로 환산해야 한다거나, 보안에 있어서 성공의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니, 스스로 존재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건데, 보안이 중요한 요소인 건 맞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런 주장들은 잘 생긴 로맨틱 영화 주인공들을 보고 나서 느끼는 ‘아, 나도 하루만 못생겨보고 싶다’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보안이 겉으로 보기에 매력이 넘치는 분야가 아닌 건 우리가 프레젠테이션을 못하거나, 잡스와 같은 상징적 인물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스스로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숨겨진 잘생김을 세상이 몰라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잘생기지 않아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낭만 가이’의 대명사와 같았던 휴 그랜트나 요즘 대만식 로맨틱 코미디에 자주 나오는 왕대륙과 같은 얼굴을 갖지 않은 게 우리다. 아아, 눈물이...

만약 보안 강화라는 것이 아이폰처럼 예쁘게 생긴 최첨단 장비 하나로 끝나는 문제였다면 우리도 잘생겼다는 소리 꽤나 들었을 것이다. 정책이나 윤리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지금도 업계 내에서 눈에 띄는, 유려한 말솜씨와 지적인 분위기 물씬 풍기는 인물 몇을 집중 조명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안은 그런 게 아니다. 인터넷에 연결된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 말, 습관, 업무 프로세스, 사회적 관습을 다 상관해야 한다. 쉽게 말해 그 본질 상 잔소리가 한 가득한 분야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메시지를 잔소리로 채워야 하는 우리가 포장을 잘 해봐야 딱 하루만 못생기지 않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관심을 끌어야 할까? 여기서 앞서 언급한, 기자 개인이 꼽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인 ‘어바웃 타임’의 명대사를 떠올려본다. 주인공 남자의 어머니가 주인공 여자를 보고 한 말이다.
“너무 예쁘면, 유머 감각이나 개성을 키울 기회를 잃게 된단다.”

보안 분야가 처음부터 잘생김의 축복을 받아 모든 사람들의 입과 손, 가방 속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일찌감치 정체된 스마트폰 분야처럼 깊이 없는 양산 체제와 자본 싸움으로 개편되었을 것도 같다. 환호 속에 일찍 정해진 답이 있으므로 유머 감각이나 개성을 키울 기회를 잃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보안 분야에 있어 유머 감각이나 개성은 역설적이게도 위에서 언급한 사소한 행동, 말, 습관, 업무 프로세스, 사회적 관습을 아우르는 눈과 마음이다. 잔소리의 주제가 도리어 우리의 매력이 될 수 있는 때다.

보안은 더 이상 컴퓨터에 백신을 설치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게 됐다. 일반 사용자들은 컴퓨터 한 대를 염려하던 것에서 각종 모바일 장비들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사이버 생활 습관 자체를 돌아보아야 하고, 조직들은 서버실 관리만 제대로 하면 되었던 것에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불만사항까지도 해소해줘야 하는 때가 됐다. 해커가 사람을 해킹하는 시대에, 보안은 드디어 기술이라는 매개로 사람 그 자체를 보게 되는, IT와 인문의 융합 분야가 된 것이다.

회로와 코드와 IT 용어가 난무한 말을 하면서 컴퓨터에 대해 설명해주지만 잘생겼기 때문에 매력적인 학과 오빠가 되지는 못했지만, 잘 생기지는 않았어도 사람의 마음을 직접 만지려고 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눈 맞춰 얘기해주는 교회 오빠는 될 수 있다.

보안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IT 기술을 위주로 한 시대의 발전 방향상, 교회 오빠로의 길을 취하는 건 어차피 도래했을 현상이자 흐름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잘생겼다면,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잘 팔리는데, 굳이 무슨 생활 습관을 걱정하고, 어차피 일할 사람 많은데 굳이 무슨 내부자 위협을 염려하는가, 하면서 말이다.

우린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처럼 생기진 않았다. 그래서 빠르게 변하는 지금 그 어느 분야보다 내적으로 풍요로워지는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 뒷판만 만지는 것에서, 인간과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것, 보안이 적절히 안 잘생겨서 가능하다. 이 또한 외모의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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