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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미국 대선과 뮬러 특검 종료가 보안에 갖는 의미
  |  입력 : 2019-03-2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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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의 사회적 정체성, 생각보다 막중하고 ‘오글거린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2016년 미국 대선은 정보보안 업계에 있어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현 시대를 장악한 무적의 철학인 ‘민주주의’를 감히 이 작은 업계가 지키겠다며 가져왔으니 말이다. 당시 러시아의 허위 정보 퍼트리기와 가짜뉴스 배포로 인한 여론 흔들기 전략이 주목을 받으며, “정보보안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제목을 단 칼럼이 하루건너 하나씩 나오다시피 했다. 미국 언론이 싫어하는 트럼프가 당선된 덕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처럼 떠올랐다.

[이미지 = iclickart]


그리고 이번 주, 당시 러시아의 선거 개입은 트럼프 본인은 물론 당시 트럼프 캠프에 소속되어 있던 그 어떤 사람들과도 상관이 없다고 결론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가 결탁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뮬러 특검의 긴 수사 끝에 트럼프는 여전히 백악관의 주인으로서 남게 됐고, 러시아의 온라인 분탕질 역시 ‘팩트’로서 변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 다소 오글거리지만 -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가짜뉴스는 여전히 정보보안의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획기적인 해결책이 나온 적은 없다. 여기서 획기적이라 함은, 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과 자동화, 로보틱스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는 시점에는, 사용자의 개입이 전혀 없는 자동 해결책을 말한다.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가짜뉴스 자동 식별 기술은, 가짜뉴스로 의심이 되는 콘텐츠와 연관이 있는 다른 콘텐츠를 여러 개 같이 제공함으로써 기사의 진위 여부를 독자 스스로가 가려내도록 하는 것이다. 사용자의 참여를 배제한 자동 가짜뉴스 거르기 기술은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합의되지 않는 이상 발생하기 어렵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검열’이라는 딱지를 떼기 힘들어 적용이 불가할 것이다.

가짜뉴스가 아니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다. 업데이트 없이도 오래 사용될 수 있고, 오탐이나 탐지 오류가 없었던 멀웨어 솔루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100% 방어라는 건 없는 개념”이라고 고객들에게 말한다. 피싱 메일이 벌써 수년 째 해커들의 독보적인 1순위 최초 침투 기법이라는 것 역시 보안 업계가 낸 해결책이 그다지 획기적이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사용자를 들들 볶듯이 교육하고, 조직 내에서 보안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문화 혁명’을 부르짖는다. 해커와의 기술 싸움도 힘든데, 좀처럼 변하지 않으려는 사용자들과 기 싸움도 진행해야 한다. 이 사용자 중에는 하급자와 동료들도 있지만 상급자들도 많으니 이미 붙기 전에 판가름 나는 싸움도 많다. 사람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 이것은 기술적으로 획기적이지 못한 자들의 궁여지책일까?

최근 버닝썬 사태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며, 연예인들의 인성 교육 문제까지 거론되었다. 어떤 분들은 “인성 교육은 답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며,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으로 다 큰 성인을 바꾼다는 것의 한계를 보안 업계에서 신물 나게 봐온 터라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시스템으로 나쁜 일을 막자’는 생각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구성원 모두가 윤리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시스템을 상상해보라. 누군가를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했더니 신고가 들어가고 벌금 딱지가 날아든다. 떨리는 마음 억제해가며 능청스러움을 북돋아 상대 이성의 손목 한 번 잡았더니 다음 날 경찰이 집에 찾아온다거나, 영화를 보고 웃다가, 동행한 사람을 몇 대 찰싹찰싹 때렸는데 갑자기 상영이 멈추고 당신은 끌려 나간다. 동성애 지지 포스터를 내 사업장에 붙이지 않았다고 혐오 범죄자가 되고, 아이를 조금만 훈계해도 자동으로 아동 학대자가 되는 세상이 그려지는 건 왜일까. 윤리라는 것의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구성원의 윤리성이 어느 정도 받쳐주지 않는 상태에서의 ‘윤리적 결과를 내는 시스템’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가짜뉴스가 퍼지지 않는 시스템을 상상해보라. 네티즌들이 너무나 착해서 거짓으로 뭔가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해도, 실수로 헤드라인에 페타바이트를 테라바이트로 잘못 쓴다거나(죄송합니다, 제 얘깁니다) 어떤 사실에 대한 해석을 조금 달리 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게 실수인지 의도인지, 시스템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결국 다수가 인정하는 여론이 진짜가 되고, 소수의 의견은 바로 거짓 혹은 가짜가 되는 묵살의 시스템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팩트’만 있으면 소수도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여론이라는 건 ‘팩트’ 그 자체가 아니라 ‘팩트에 대한 해석’으로 갈라질 때가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시스템에서 답을 찾자’는 움직임은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유’라는 가치를 그 근간에 두고 있는 인터넷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온라인에서의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시스템적으로 “플랫폼 사업자들이 책임진다”는 지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직 더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검열의 도구를 마련하라”는 주문이나 다름이 없다는 우려들이 벌써 나오고 있다. 작년 유럽연합이 시행하기 시작한 GDPR도,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개념을 거대한 시스템 차원으로 가져갔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최근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란 것이 여기 저기 적용되는 속도만 봐도, 어떤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개인의 의견이 묵살되다시피 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여론이 정해주는 것이면 시스템적으로 따라야 하는 게 지금의 분위기다. 그런 흐름 속에서 시스템적 통찰과 시스템적 해결책이 여기저기 제안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른다. 아직 인류는 개인 모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모두가 긍정하는 결과를 내는 시스템을 만든 적이 없지만 말이다.

시스템이란 건 규칙 위에 서고, 규칙은 인간의 선함을 전제로 했을 때 실패한다. 그러나 인간의 악함을 전제로 했을 때 규칙은 반드시 억압적이 된다. 거대한 모순이다. 그래서 정보보안은 더욱더 사람의 교육에 매달려야 한다. 더 좋은 걸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누군가 시스템의 변화를 꾀할 때, 묵묵히 뒤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붙잡아 가며, “너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가장 획기적인 해결책이며, 늘 고수해오던 방법론이다.

미 대선 이후 보안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됐다면, 뮬러 특검이 끝난 지금부터 보안은 - 다소 오글거리지만 - 자유의 수호자가 됐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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