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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씨남정기-1] 4차 산업의 문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  입력 : 2018-06-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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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온갖 신기술에 쫓기다가 특등 기자석을 차지한 사연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애니메이션 슈렉에 나온 당나귀는 자신을 양파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까고 또 까도 새록새록하다는 자화자찬이다. 그런데 이건 당나귀가 아니더라도 다 그렇다. 어렸을 때 보고 들은 것, 자라고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사람을 양파처럼 만들고, 우리는 어떤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그것을 까먹으면서 꾸역꾸역 살아간다.

[이미지 = iclickart]


스스로가 양파인 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그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어떤 계기로 껍질 한 겹이 벗겨지면 따갑고 아프다가도 내게 이러한 속살이 있었다는 것이 새로울 때가 있다. 보통은 위기 상황에서, 혹은 낯설거나 고된 환경에 꾸준히 노출되었을 때 비로소 껍질이 까지곤 하는데, 자신의 새록새록한 모습이 구원이 되기도 한다.

왜 뜬금없이 양파 얘기냐면, 그놈의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불현듯 우리 생활 속에 들어서버린 신기술 때문이다. 수많은 IT 분야 속에서도 걱정을 담당하는 보안 쪽에 있어서 그런지, 기자에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염려’와 ‘공포’, ‘위기’와 동의어였다. 특히,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없앨 직업의 목록을 보면 항상 ‘기자’와 ‘번역가’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 두려움은 그저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의 촌스런 감정이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은 바둑으로는 기계를 이길 수가 없게 되었다. 진 건 바둑 기사들인데, 난 내 월급 통장이 마르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하, 큰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술이라도 좀 배워둘 걸, 난 뭘 믿고 글자에만 매달려 살았을까. 그 때부터 기자의 경쟁 상대는 타 매체가 아니라 언제고 나타나 기자들에게 해고 통지서를 겨눌지도 모르는 알파고 사촌 쯤 되는 상상 속 존재가 되었다.

처음에는 기사 수를 늘려보았다. 알파고의 채찍을 맞는 것 같은 기분으로,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농담까지도 줄여가며 타이핑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났고, 잘 하지도 않던 야근도 불사했다. 가끔 인공지능 기사가 오보를 냈다는 소식 같은 게 있으면 애꿎은 모니터를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기존 쓰던 것의 100% 이상 늘릴 수는 없었다. 전능하신 알파고 기자님이 써내려갈 기사량이 족히 하루 100건은 될 텐데, 일개 사람인 난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때에조차 일주일에 100 페이지도 못 채웠다.

양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승부였다. 그래, 인간은 질이지. 기계는 단순무식하게 양이나 채우라지. 그렇지만 질을 올린다는 것 역시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매번 기사의 첫머리를 시작하며 인간만이 부릴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과 깊이 있는 울림을 기도했으나, 본문 내내 깨지 않은 잠처럼 몽롱하게 헤매다가, 바이라인을 쓸 때쯤엔 ‘다음엔 잘하자’만 반복할 뿐이었다. 기계의 속도를 못 쫓아갔을 때는 ‘그래, 난 사람이었어’라도 확고해졌는데, 인간다워지는 길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앞이 점점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책과 자료를 모아봤다. 출근길과 취재길, 오며가며 영화 보려고 산 탭에 각종 신기술의 백서와 설명서, 학술 자료가 쌓였다. 세상에는 주장과 이론이 얼마나 많은지 100MB가 금방 10GB가 되었다. 지금은 정확히 37.8GB의 텍스트들이 탭 안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파일 저장 속도와 텍스트 독해 및 이해 속도는 (알파)고 기자와 문 기자의 기사량 차이보다 더 심각했다. 차라리 아메바 수준도 안 되는 탭이 문득 지능을 갖추게 될 날이 더 빨리 올 것 같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는 수밖에 없었다. 지식이란 놈, 지겹게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만 절감했다. 지식도 이런데 지식 뒤에 오는, 인간만이 부릴 수 있다는 ‘통찰’은 언제나 오실까.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뭔지, 네트워크의 기본이 무엇인지, 데이터 처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데이터 과학이 어떤 것인지 겉핥기를 아무리 한다 한들, 인간만이 찾을 수 있는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고 기자는 수천 년의 바둑 지식도 잠깐 만에 초월해 버렸는데, 이런 입문서 비슷한 것들 아무리 읽어봐야 무슨 소용일까. 이미 그는 어느 실험실에선가 네모난 얼굴을 하고 37.8GB 따위 피아니스트 바이엘 치듯 단숨에 익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갈 길이 모두 막히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풀이 죽었다고 해야 할까. 어디선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하루에도 100건 이상 쓸 수 있는 고 기자가 가소롭게 지켜보고 있을 거 같아 정말로 아는 이야기만 쓰게 되었다. 책에서 읽고, 인터뷰를 통해 전달받은 내용을 그냥 앵무새처럼 담는 게 아니라(물론 업무상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내 머리가 이해하고 소화한 것만 담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솔직해졌고, 어떻게 보면 소심해졌다.

그러면서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난 이제 가망이 없어.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고 기자가 없는 곳으로 가야겠어.’ 그리고 여러 날 경상과 전라, 충청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았다. 깊은 시골로 다녔다. 고 기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는 곳을 물색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곳이 어디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지만 주말이면 식구들을 태우고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한 6개월을 찾아다녔을까. 앞에는 강이 흐르고, 등 뒤에는 산이 서 있는 곳이 있었다. 가로등이 없어 밤운전을 하면 백미러로 밤만 가득했다. CCTV 비슷한 것도 없어 누가 우리 가족을 빅데이터로 분석하려야 할 수가 없었고, 인터넷도 되지 않아(들어오려면 전주를 비싼 돈 주고 새롭게 세워야 해서) 인공으로 만든 지능 따위 근처도 못 온다. 바퀴벌레가 아니라 온갖 곤충들이 있었고, 심지도 않은 버찌와 보리수나무 밑에 그물을 깔아두면 밤새 농익은 열매들이 떨어져 낮에 아이들과 갈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고 기자, 네가 불로소득의 과실수 맛을 알아?

게다가 흙먼지 나지 말라고 동네 주민들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대신 자갈을 깔았더니, 누가 걸어 다녀도 차각차각 물장구 소리가 난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옆집의 아이들이 우리 집을 기웃거리고, 그 기척에 우리 아이들 엉덩이가 들썩들썩 한다. 문 열어 주면 아이들은 이미 저만치 나가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이 하루 종일 창문을 왔다 갔다 한다. 아내 또래 엄마들이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자갈은 멈추지 않는 실로폰이다. 소리가 멈췄을 때 슬며시 나가면 서울서 볼 수 없었던 긴 노을의 꼬리가 강물 따라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잊고 있던 풍경이다. 80년대 초반에만 해도, 지금은 개발로 없어진, 서울의 동네 뒷산에서도 산딸기를 따먹을 수 있었다. 집 앞의 공터에서 자라던 이름 모를 꽃에서도 꿀을 빨아먹었고, 쑥은 굳이 사지 않아도 적당히 캐먹을 수 있는 야채였다. 골목마다 내 또래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있었고, 저녁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할까봐 우린 초조한 마음으로 깽깽이 발을 딛고 서로를 잡으러 다니거나, 급한 마음에 딱지를 헛치기도 했다. 내 기억 속에서나 내가 살던 곳에서나 없어졌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다시 연출되고 있었다. 고 기자, 너에게 이런 추억이 있긴 한지. 수많은 jpg나 mp4 파일 말고 말이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벌레를 보면 소금 맞은 지렁이보다 더 높이 뛰게 되고, 농사일이나 동네 담벼락 보수 일, 창고 도색 작업 등에 목장갑 끼고 기세 좋게 참여하면, 2분도 되지 않아 어르신들이 혀를 끌끌 차게 되는 손재주를 가진 입장에서, 적응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알파고에게 일자리를 뺏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상상 속에서 그를 그려놓고 경쟁한 시간이 양파의 껍질을 내 안에 만들었는지, 낯선 환경에서의 일들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힘들다 싶으면 내 껍질들 속안에 감춰졌던 어렸을 적 기억들이 구원처럼 다가왔다. 꺼풀이 벗겨지니 잊혔던 뭔가가 양파즙처럼 툭 튀어나오는 것을 경험하는데, 그 청량감이 대단하다. 빛 공해 가득한 곳에서 완성하지 못했던 여름철대삼각형 별자리를 간단히 찾아내면서 천문학자를 꿈꿨던 기억이 살아나는 밤이면 낮 동안 잠을 쌓아둔 아이들을 눕혀놓고 나와 평상에 올라 하늘을 본다. 그런 순간이면 4차 산업혁명의 기술 따위가 전혀 염려스럽지가 않다. 그 기술들로 채굴할 수 없는 기쁨을 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관찰해야 하는 ‘보안 기자’로서 나의 자리는 밤새 저물지 않는 최첨단 도시가 아니라 밤이 깜깜하고 낮이 뜨거운 시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혀 IT 기사스럽지 않은 연재를 시작해볼까 한다. 4차 산업대를 맞아 골로 도망간 남정네의 록. 줄여서 4씨남정기.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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