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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영화] ‘머니볼’이 그려내는 색다른 낭만, 국어사전과는 다른

입력 : 2024-05-2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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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이질감이 느껴진다면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라고 나오는 영화 <머니볼> 속 명대사의 원문은 “How can you not be romantic about baseball?”이다. 야구에 대해 어떻게 낭만을 품지 않을 수 있냐는 뜻이다. 영화 내내 통계 수치와 몸값, 선수 스탯이 열 띄게 논의되는 영화의 마무리 장면에 나오는 대사인데도 위화감이 전혀 없다. 러닝타임 동안 묘사된 차가운 수학 속에 낭만이 숨어있다는 걸 어떤 관람자라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야구가 원래 낭만적인 종목이기도 해서이다.

[이미지=네이버 영화]


하루는 초등학생 아이가 낭만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초등학생에게 답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도 나왔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이걸 그대로 읽어주면 ‘현실에 매이지 않는다’는 부분이 강조될 것 같았다. 감상적이라거나 이상적이라는 말도 아이에게는 어려울 테니까. 해서, 아직까지 답을 미뤄두고 있다.

‘낭만’은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처럼 거친 눈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자세로 기다리는 것도 낭만이고, <푸른눈의 사무라이>의 눈 먼 대장장이처럼 가장 강한 검을 만들기 위해서 한없이 순수하게만 철을 제련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불순물을 조금 섞는 자신만의 방법을 갖추는 것도 낭만이다.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묘사된 백석 시인의 침묵도 낭만일 수 있고, 마이클 부블레의 노래 의 ‘It’s you’라는 후렴구의 단순한 가사 한 줄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라고 낭만에 대한 정의가 시작되긴 하지만 정말 그런가? 황장군의 기다림은 아무나 쉽게 따라할 수 없어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로서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한 것이기도 하다. 눈 먼 대장장이의 불순물 노하우는 맹목적으로 순수를 추구하던 시대에 오히려 가장 현실성 있는 무기 제작법이었다. 백석의 침묵도 황장군의 그것처럼 당시 그가 할 수 있던 가장 현실적인, 최선의 저항이었고, it’s you라는 가사는 온갖 비유가 나온 후의 직설이라 듣는 이의 심장을 일직선으로 찌르고 들어가며, 그래서 낭만적이다.

감히 국어사전의 권위에 저항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을 낭만으로 부르던 때가 서서히 지나고 있지 않나, 라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 뿐이다. 우정을 나눌 사람들과의 무전여행을, 양보할 수 없는 사랑과의 야반도주를, 낯선 땅 한 가운데에 아이를 홀로 놔두고 ‘강하게 커서 와라’라고 주문하며 떠나는 부모의 교육 방식을 낭만으로 정의하던 시대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철 지난 이야기로 들린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점점 ‘무모함’으로 부르고 있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머니볼>이 온통 숫자 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낭만적인 건, 그 숫자들 속에 가장 현실적인 구단 운영 방식을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는 빌리 빈 단장의 야구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돈만 많으면 누구나 쉽게 강력한 구단을 꾸릴 수 있겠지만 그에게 그건 성립되지 않는 조건이라 그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만 했고, 결국 해내고 만다. 심지어 이 영화는 실화를 영화화 한 것이다. 지극히 현실에 충실하기 위해, ‘야구가 언제부터 숫자와 통계 놀음이었냐’는 당대의 거센 비판을 뚫어냄으로써 스탯 기반 야구의 유효성을 입증한 한 구단장의 실화가 이렇게나 낭만적일 수 있다니. 영화 관람 자체가 비현실적인 경험이다.

0과 1로만 이뤄진 세상이지만 사이버 공간이 마냥 차가운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실수 많은 사용자들이 있고, 호통 많은 보안 담당자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으며, 욕심 많은 해커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이야 해킹의 뜻이 변질되었지만, 원래는 더 깊은 지식에의 탐구가 해킹이란 것의 기본 바탕이었다. 해커들끼리 뭉쳐서 자기들만 아는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도 했었다. 그래서 그 때는 해커들을 낭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전설처럼 남은 이야기이긴 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개화기나 근현대 즈음 ‘대학생’과 비슷한 느낌이다. 당시에는 ‘대학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귀한 신분이었다. 높은 수준의 지식인 혹은 예비 사회 지도자 정도 되는 이들로서 존중 받았다. 당시 학생들은 대학교 교복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고, 사회 운동도 적극 개진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이라는 단어에서 그런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학생들이나 학교의 수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시대가 그렇게 변했다. 아마 그 옛날의 ‘대학생’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을 되찾기는 힘들 것이다.

낭만은 변할 수밖에 없다. 선수의 혈과 육으로 이뤄진 종목으로서 야구를 바라보는 것도 낭만일 수 있지만, 숨어있는 스탯(즉 가치)을 찾아 효율적인 선수들로 구단을 구성하여 돈으로 도배된 리그를 폭격하는 것도 낭만일 수 있다. 과거 해커들의 낭만적인 모임은, 다크웹에 몰려 못된 짓들을 공모하는 것으로 변했다. 그들은 점점 배가 불러가고 있고 자원에 제한이 없어져 가고 있어, 한정된 예산으로 방어막을 구축해야 하는 보안 업계는 점점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 어느 순간 ‘보안 vs. 해커’의 싸움을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가? 이제 그 해커들을 폭격하는 게 낭만으로 정의되려는 듯한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것만큼 낭만적인 싸움 결과가 어디 있을까.

[이미지=네이버 영화]


아직 ‘해커’라는 단어가 주는 낭만적인 느낌이 완전히 박탈되지는 않았다. 보안 전문가를 ‘해커’로 지칭하는 글들도 외신에서는 자주 보인다. 좀 더 분명히 구분하기 위해 ‘해커’ 앞에 ‘화이트햇’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기도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건, ‘해킹’이라는 표현에 대한 미련일 수도 있지만, 낭만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해커와 크래커를 구분하자는 움직임도 있는데, 아직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이 목소리조차, 해킹에 대한 낭만이 서서히 벗겨짐을 보여준다. 원래 낭만이라는 게 쉽사리 떨어지는 건 아니다. 어쩌면 ‘세대’ 단위로 세어야 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안 전문가’보다 더 입에 착 감기는 표현이 나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굳이 낭만이 변해야 할까? 그 낭만이 결국 우리 입에서 빌리 빈의 탄식과 같은 혼잣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How can you not be romantic about baseball?)” 아마 해커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공격을 성공시키고 비슷한 감정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아직 해킹이란 것에 대한 낭만이 컴퓨터 좀 만진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렴풋이나마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낭만을 느끼는 한 그 혼잣말은 진심에서 나온 것일 테고, 그 진심이 그들을 연구하게 만들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킨다.

보안 업계가 먼저 가져와야 하는 게 바로 이 입술의 고백이다. 공격 시도를 막고서, 네트워크의 모든 위협들을 청소하고서 ‘지겨워’나 ‘피곤해’가 아니라, 이따금씩이라도 ‘어떻게 보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라고 우리도 모르게 내뱉을 수 있다면 ‘해커 vs. 보안’의 싸움은 지금과 사뭇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 때 보안은 지금보다 농도 높은 ‘진심 모드’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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