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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이 아빠를 만든다 03] 안전의 열매에 배가 부르다

  |  입력 : 2023-03-3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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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안은 의외로 산 지식을 다루는 분야라, 그 안에서 발굴되고 전파되는 중요한 원리와 실천 사항들은 사이버 공간에서만 가치를 발휘하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도 보안의 메시지들은 빛을 발합니다. 그것을 아빠의 관점에서 연재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2주에 한 번 24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지난 번 편지에서 아빠가 이런 말을 했었어. 보안의 열매는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거라고 말야.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편지가 너무 길어질까봐 내용을 많이 줄인 거라서 마음에 남더라. 아무리 의미가 깊고 위대한 일이더라도 열매의 단 맛을 느끼지 못하면 오래 할 수도, 정성을 쏟을 수도 없는 건데 그 중요한 부분을 너무 쉽게 써버렸지 뭐야. 그래서 오늘 편지에서는 너희들에게 안전의 열매에 대해 써보려 해.

[이미지 = utoimage]


처음에 너희들이 세상에 나오고 얼마 지나 막 걸음마를 하기 시작해서 외출도 가끔씩 시도하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아빠는 집에만 돌아오면 곯아 떨어졌어. 그 때는 아빠가 아직 젊어 체력이 그렇게 빈약한 사람도 아니었으니, 엄마는 가족들이랑 외출하는 게 그렇게 싫은 거냐고 섭섭해 하기도 했었지. (아빠가 집돌이 성향이 강하긴 해.) 아빠가 피곤해 했던 이유는 너희와 거리를 걸어다닐 때나 차를 타고 운전할 때나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기 때문이었는데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여태까지 없었구나.

너희들도 나중에 부모가 되어 가족을 가져보면 알겠지만 아가들이란 얼마나 약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그리고 그에 비해 아빠가 기자 일을 하면서 접하는 세상은 얼마나 위험한지 말야. ‘보안’뉴스 기자이면서 뭘 그렇게 위험한 세상을 보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맞아, 이곳에서는 살인 사건이나 아동 학대 사건 같은, 헤드라인만 봐도 피가 솟구치는 그런 사건들은 많이 없어. 대신 어떻게든, 얼마나 멀리 당사자가 도망을 가든 기필코 해코지를 해야 하겠다는 사람 마음의 꺾이지 않는 악의와, 나쁜 일에는 비상하게 머리가 돌아가면서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자잘자잘한 일들에는 게을러지는 인간 본연의 성품은 사이버 공간이라는 익명의 장소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지.

‘에라이, 나쁜 놈들!’이라고 욕하는 것으로 수많은 사건들을 쉽게 지워내지 못했던 건, 사실 아빠 마음에도 숨겨진 악의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 해커란 사람들처럼 아빠가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었고 똑똑했다면, 그래서 온갖 기회가 아빠 앞에 열려 있었다면, 아빠는 굳건히 지금 너희들이 아는 아빠로 남아 있었을까. 살아오면서 급전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어떤 정보가 간절했던 순간들도 있었는데, 그런 때에 아빠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럴 능력이 없어서였을지도 몰라. 여러 소식들을 통해 듣는 해커들의 악행에 ‘햐...’하고 놀라면서도 아빠는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단다.

나쁜 놈 눈에는 세상이 나쁘게만 보이는 법. 그러니 약하고 아름다운 너희들을 양쪽에 끼고 외출을 하는 게 얼마나 아빠에게는 비상 상황이었겠니. 너희들이 걸어가는 모든 곳에서 아빠는 사방을 부지런히 살피느라 바빴어. 저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주머니 속에 뭐가 들어있을지 계속 노려보고, 갑자기 뒤에서 나는 인기척에 혼자서 반격 준비를 하기도 하고, 전방 45도 골목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소머즈라도 되는냥 귀를 기울이고... 운전할 때도 사방의 거울을 번갈아 쳐다보느라 목이 뻐근할 지경이었지. 너희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나쁜 일을 막는 것이 그 때 아빠가 가진 단 하나의 목적이었고, 사실 그래서 지금은 너희들고 그 때 외출해서 무슨 얘기를 했고, 너희들이 무슨 표정을 지었고, 무슨 옷을 어떻게 맞춰 입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때 엄마가 찍어둔 사진을 보며 기억나는 척 하곤 하지.

지금도 너희들은 아빠가 엄마보다 운전을 못한다고 답답해 하지. 아빠가 못해도 10년은 먼저 면허를 땄는데도 말야. 사실 아빠는 이유를 알아. 아빠가 항상 느리게 운전을 해서 그렇지? 그것도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며 방어 운전을 하다가 붙어버린 버릇이야. 너희들이 뒷자리에서 종알종알거리면 아빠 발목에서는 저절로 힘이 빠지고, 액셀레이터가 좀처럼 밟아지지 않는단다. 그건 지금도 그래.

그리고 감사하게도 너희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이제는 어느 덧 친구를 엄마 아빠보다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다행스러운 일이야. 지금은 아빠가 너희들 어렸을 때처럼 너희와 밖에 나갈 때 사방을 경계하지는 않아. 너희들이 조금 컸다고 그런 걸까. 그런 면도 없지 않겠지만, 사실 너희들은 아직 아가에 더 가까운 걸. 아빠가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 이르지.

다만 언제부턴가 아빠가 안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달리 하기 시작했어. 그 때의 아빠는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어나면 안 되고, 무슨 위험이든 막을 수 있어야 안전한 거라고 생각했었고, 지금은 내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을 충실히 막는 게 안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예를 들어 동네 형아 누나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잘못 던진 공 정도는 아빠가 너희들을 감싸 안으면서 막을 수 있지. 하지만 예고도 없이 골목에서 총을 든 괴한이 나타난다면 아빠로서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한계가 분명히 있어. 너희들 아장아장 걸어가는 경로에 돌부리는 아빠 힘으로 충분히 발견해 치울 수 있지만, 싱크홀 같은 게 발생해서 발 밑에 땅이 꺼지면 아빠가 뭘 어떻게 하겠니.

해커들의 소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의를 꾸준히도 뿜어내는 인간 참상을 보며 아빠 안의 음흉함과 나쁜 것들을 보게 됐다고 했지? 그런 해커들을 막는 보안 전문가들을 보면서 아빠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게 됐다고 할까. 아빠가 있는 보안 업계에서도 예전에는 그 어떤 해킹 공격도 다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공격을 막을 수는 없으니 대처를 빠르게 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보는 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지.

해커들 중에도 든든하게 월급 받고, 수익도 좋아서 긴 시간 부담없이 공격할 사람을 정해서 집요하게 노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대충 여러 사람에게 미끼를 흩뿌려서 걸리는 사람이 있으면 공격하고 없으면 다시 미끼 뿌리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지. 실력이 좋아서 아무리 방어 준비를 철저히 해도 구멍을 찾아 뚫어내는 해커가 있는가 하면, 이제 막 해킹을 시작해 선배 해커들의 기술을 흉내 내는 데 그치는 해커들도 있단다. 이 모든 부류를 막을 수 있으면 이상적이겠지만, 사실 ‘반드시 침투하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는 해커가 실력까지 좋고 시간도 많으면 우리는 막을 방법이 없어.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 걸리면 공격을 허용하되 대신 빠르게 피해가 퍼지는 걸 막는 게 최선이야. 하지만 방어를 한다고 애를 쓰는데 우연을 바라는 아마추어 해커들에게조차 걸려든다? 이건 망신이지. 그들이 잘 해서 당한 게 아니고, 우리가 못해서 당하는 거, 아빠가 있는 이쪽 업계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런 어설프고 하찮은 공격 정도는 죄다 막을 수 있어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 능력 바깥의 상황을 통제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걸 빠짐없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알면 알수록 안전에 가깝더구나.

그렇게 아빠라는 사람의 한계를 직면하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너희 스스로가 안전을 지키도록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어. 안전이라는 것을 아빠 개인의 목표가 아니라 우리 가족 전부가 이뤄가는 문화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지. 아빠 개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도 적고 대응할 능력도 적으니 역부족이야. 대신 엄마와 너희들이 각자의 몫을 맡으면 우리 가족의 안전도는 종합적으로 올라가지. 아빠 혼자 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강력하겠니.

그래서 건널목을 건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주차장에서 뛰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여러 번 설명해 주고, 계단에서 난간을 잡아야 한다는 것과, 코로나 같은 질병이 유행할 때는 친구들과 간식을 같이 먹고 싶어도 꾹 참고 좀 떨어져서 마스크 속으로 얼른 간식을 넣어서 마스크를 쓴 채 씹어야 한다는 걸 알려줬지. 그러면서 너희들 많이 혼나기도 하고, 칭얼거리기도 하고, 배운 걸 잊어버려서 엉뚱한 수칙을 지키면서 엄마 아빠를 웃기기도 했구나.

그리고 어느 덧 이제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하는 나이가 됐어. 슈퍼마켓 트레이에 소독제를 뿌리지 않고 가는 아빠를 붙잡고 조용히 분무기를 내밀고, 새로 태어나는 아가가 탈 차니 오늘 외출해서는 꼭 세차하고 돌아오라고 다짐을 받기도 하면서. 우리 가족의 안전이라는 것은 그렇게 너희의 성장을 열매처럼 아빠 품에 안기더구나. 언제 이렇게 컸니, 하면서 너희들 엉덩이를 토닥일 때 아빠는 안전의 열매를 맛보고 있는 것이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너희 엉덩이를 두들기는지,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아무리 먹어도 맛있고,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안전의 열매는 내가 지키려 하는 대상들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이 스스로 안전을 익히면서 자라고 번창해 나름의 일가를 이루는 것에서 맛의 절정에 다다르지. 아빠는 너희들과 있어 안전이라는 고루한 것이 참 맛있다.

-2023년 3월 30일, 아빠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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