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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판] 요즘 빅테크들, 수리할 권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입력 : 2023-03-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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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들이 ‘빅테크’에서 만든 장비들을 직접 수리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기업들은 주장한다. 보안이 저해되며, 성능도 낮아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잃는 게 더 많을 거란다. 진짜일까, 변명일까?

[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소비자가 구매한 장비를 소비자가 직접 수리할 수 있는 걸까? 이른 바 ‘수리할 권리’는 당연히 주어져야 할 권리일까? 결론을 내리기에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며, 소비자와 제조사 모두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선뜻 한 쪽 편을 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논의는 오랜 시간 결론 없이 이어져 왔다.

[이미지 = utoimage]


인간은 지난 수천년 동안 여러 가지 도구와 장비와 집기들을 자기 손으로 고치며 살아 왔다. 하지만 산업시대가 도래하면서 ‘고칠 권한이 소유주에게 없는 장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가전장비, 컴퓨터, 휴대폰의 순으로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면서 ‘당신이 구매했지만, 당신이 마음대로 뜯어보면 안 되는 것’이라는 개념이 우리 생활 속으로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1920년대, 소비자가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장비의 제조사들은 일부러 제품들의 수명을 짧게 만들어 사라지지 않는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장비가 고장났을 때 소비자들은 수리하는 대신 새롭게 구매해야 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50년대에 이르러서 제조사들은 부품들에조차 소비자들이 손을 뻗치는 것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막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마냥 괜찮을 리가 없었다. 슬슬 ‘새로운 서비스’ 제공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고장난 장비들을 비공식 경로로 얻어낸 부품들을 가지고 수리하기 시작했다. 이 부품들은 먼저 고장나서 고철이 된 장비들로부터 뜯어내 수급하는 게 보통이었다. 혹은 진품과 매우 비슷한 복제품, 혹은 경쟁사 제품으로부터 부품을 충당하기도 했다. 물론 이 업자들의 수리 품질은 좋다고 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런 서비스들이 사라지지 않은 건 원 제조사들의 행태에 소비자들이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부 운동가들은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왜 소비자가 스스로 구매한 제품을 고칠 수는 없는가? 왜 기업들은 수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필요를 채우기는커녕 거들떠도 보지 않는가? 일부 법률가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의했고, 실제로 부분부분 수리할 권리를 인정하는 규정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 일부 제품에만 국한되었다. 아직도 ‘수리할 권리’를 방해하는 대기업들의 로비는 공격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수리할 권리’는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았다.

법률과 규정의 측면에서
‘수리할 권리’라는 개념은 적어도 법률의 측면에서는 거의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자동차 분야에서 수리할 권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4년 사우스다코타 주에서는 디지털 장비들에 대한 수리할 권리의 기초가 될 만한 법안을 만들어 도입하나 했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약 40개 주에서 수리할 권리를 통과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2022년 12월에 와서야 뉴욕에서 ‘디지털공정수리법(Digital Fair Repair Act)’이 통과됐다.

유럽연합도 수리할 권리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2022년 10월 ‘규정조사위원회(Regulatory Scrutiny Board, RSB)’가 수리할 권리를 보장할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서 멈춰 선 상태다. 호주의 경우 자동차에 대한 수리할 권리를 전국적으로 허용할 법안이 통과됐고, 캐나다 정부는 수리 전문 업체들이 특정 개발사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를 건드리지 않고 장비를 수리할 수 있도록 법률적인 측면에서 환경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에서도 수리할 권리를 얻어내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다.

데이터 삭제와 컴퓨터 재활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랑코테크놀로지그룹(Blancco Technology Group)의 CTO 러스 언스트(Russ Ernst)는 “제조사들이 소비자들의 수리할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하려면 간접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자들과 기업들이 기후 변화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보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환경 관련 평가에서 수리와 관련된 점수를 도입할 수도 있겠죠. 이럴 경우 기업들은 수리를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네기멜론대학의 비즈니스 윤리 교수인 존 후커(John Hooker)도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생산과 제조를 주로 하는 기업들의 윤리관과 의식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규정을 통해 억지로 수리를 지원하도록 해 봐야 신통찮은 결과만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빅테크에 있어 수리란 무엇인가
애플과 삼성의 경우 최근 소비자들의 수리할 권리를 약간은 인정해 주는 듯한 행보를 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테크 기업들이 여기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테크 제품들은 주요 구성품에 손 댈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거나, 대체 부품을 찾는 게 불가능하도록 유통 과정도 형성되어 있다. 소비자들이 임의로 건드린 흔적이 있다면 A/S도 해주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을 위시로 대부분의 테크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수리할 권리를 사실상 훼손시키는 장치를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다.

기업들에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다양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저희 회사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기술의 비밀이 공개됩니다.”
2) “소프트웨어 취약점들에 대한 정보가 드러납니다.”
3) “고객 데이터가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면서 이 기업들은 공식 수리점들조차 부품과 ‘수리 방법’을 찾기 힘들게 만들어두고 있으며, 각종 보안 장치들을 방어막으로 삼아 수리의 손길이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리할 권리를 규정화 할 때 여러 안전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기업들의 걱정을 확실히 경감시키고 없애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리 산업 대변인들의 경우, 자신들이 수리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와, 자사 제품의 안전과 기술 유출에 대해 걱정하는 기업들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며,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의 고장에 대처할 수 이게 되고, 기업들은 기술 및 정보의 유출을 방지하는 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수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소비자의 자유에 맡기는 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딜러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운영함으로써 일종의 ‘수리 네트워크’ 를 형성하는 게 안전할 것입니다. 수리 전문가들을 선정하고, 교육하고, 수리의 권한을 맡길 때 동시에 기밀 유지 협약도 맺는다면 중요한 정보가 불필요하게 새나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전자 장비 재활용 전문 업체 선킹(Sunnking)의 회장 아담 샤인(Adam Shine)의 설명이다.

언스트는 빅테크들이 엄살을 부린다는 의견이다. “수리할 권리를 인정할 경우 위험 요인이 발생한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수리 산업의 형성 자체를 막아야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심지어 수리할 권리를 허용한다고 해도 빅테크들이 실제로 뭔가 대단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겁니다. 수리할 권리를 인정할 때와 안 할 때의 차이는 수리 시장이 존재한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PC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수리 업체들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공식화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윤리적 측면에서
소비자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소비자의 수리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많이 기울어진 상황이다. 버려지는 전자 장비들이 환경에 미치는 안 좋은 영향들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고, 일부러 수명을 짧게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미치는 기업들의 행태에 대해서 사용자들이 적잖이 분노하고 있다. 이것이 여러 단체들이 연합하도록 만들고 있는데, 아직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건 대부분 서방 세계 조직들이다.

그러나 수리할 권리는 세계적인 이슈일 수밖에 없다. 자꾸만 새 것으로 바꾸는 바람에 버려지는 전자 쓰레기들 중 상당수가 개발도상국의 땅에 묻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쓰레기에서 귀중한 부속품들을 찾아 생활비를 버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반대로 이 제품들이 분출하는 여러 독성에 애꿎은 사람들이 노출되기도 한다.

수리할 권리는 이러한 전자 쓰레기와 환경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은 수리된 장비 혹은 중고 장비 시장으로서 잠재력도 충분하다. 값비싼 새 제품만이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고 성능도 좋은 중고 제품 혹은 수리된 제품을 판매한다고 했을 때 기업들로서는 새로운 수입원이 생기는 것이니 나쁠 게 없다. 쓰레기도 줄이고, 새 수입원도 얻는 것이니 오히려 기업들로서는 추구해봐야 할 방향이 아닐까.

언스트는 “조금만 다른 각도로 보면 어마어마한 기회가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너무 이른 시기에 버려진 장비들과, 고쳐서 쓸 수 있는 장비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상황입니다. 물론 새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이익이라고 기업들은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수리 시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사업 효율화 혹은 비용 효율화는 왜 생각을 못할까요? 특히 지금처럼 ESG가 강조되는 때에 말이죠.”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은 바보가 아니다. 당연히 이러한 생각과 인식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빅테크 안에는 다수 존재한다. “환경 문제, 더 나아가 윤리 문제에 점점 더 많은 직원들이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기업들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재들이 모자란 시대죠. 직원을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은 기업들로서는 직원들의 이러한 관심사를 그냥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기업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갑자기 환경 친화적인 조직으로 하루 아침에 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스트는 “내부적으로 상충하는 부분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부서는 환경 친화적인 방향으로 기업이 움직여야 시장에서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질 때 이득을 보게 되지만, 반대로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는 무조건 수익을 올려야만 살아남는 입장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전자는 광고부나 홍보부 정도 되겠고, 후자는 영업팀 정도 되겠지요. 내부 교통정리가 선행되어야 기업은 환경 친화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샤인은 “장비를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자체가 갖는 윤리적 장점이 크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그런 윤리성 위에 ‘수리할 권리’를 옹호하는 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중고 부품을 수급해 테크 회사나 제조사에 팔아넘기는 식의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수리할 권리’를 주장합니다. 한쪽에서는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업체들과 손을 잡고 있는 것이죠. 순수 수익을 목적으로 이 운동을 벌이는 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짚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지금은 ‘수리할 권리’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그것을 도입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시대는 아니다. 사실상 여론은 이미 ‘수리할 권리’는 반드시 소비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기본 권리라는 쪽으로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환경 문제도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수리할 권리’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명문화 되고 도입될 것이다. 그 형태나 세부 내용이 나라마다 혹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수리할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미래는 바로 그것, ‘세부 내용’이다. 실제로 수리할 권리가 널리 받아들여질 때, 그래서 법원에서도 이를 기본권으로 인정해 줄 때, 어떤 식으로 이 권리를 현실화시키고 실행할 것이냐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 쓰레기에 섞여 있는 독성 물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특허로 보호되어 있는 기업의 기술은 어떻게 보호해주며, 가장 안전한 데이터 삭제 기술은 무엇인지 실제 수리를 하는 상황에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을 찾아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스트는 “장비의 내부 구조나 전용 수리 도구들은 대중들에게 무한정 공개되는 게 맞는 것인지, 제한을 한다면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접근을 허락할 것인지 등 생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수리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 IT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개인이 자기가 산 핸드폰을 마구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걸 허용하는 건 또 좀 너무한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 고장 수리 비용은 누구 내야 할까요? 애초에 장비 제조가 허술하게 됐다고 주장한다면, 회사에서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책임 소재를 정하는 문제는 상당히 난해할 겁니다.”

글 : 리차드 팔라디(Richard Pallardy), IT 칼럼니스트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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